마을로 돌아온 엘레나는 여전히 숨이 가빴다.
어두운 숲속에서 자신을 쫓아온 붉은 눈동자의 남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가 내뱉은 말 또한 귓가를 맴돌았다.
“네가 나의 짝이 되었다.”
그 말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지만,
그녀의 손목에 새겨진 달 모양의 문양이 현실을 부정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얇은 옷소매를 걷어 올려보니,
여전히 그곳에서 희미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단순한 착각일까?
아니면 진짜 무언가가 그녀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저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야. 그렇지 않다면, 내가 미친 거겠지.’
엘레나는 애써 자신을 타일렀다.
하지만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고,
그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달빛이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밤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때, 손목이 다시금 따뜻해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부드럽게 손을 잡아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무언가가 그녀를 숲으로 다시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야. 나는 갈 곳이 없어.”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창문을 닫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깊은 밤이 되자 창밖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먼 곳에서 부르는 신호 같았다.
아침이 밝았다.
엘레나는 무거운 머리를 감싸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새 꿈속에서도 붉은 눈동자의 남자가 나타났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마을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중요했다.
꿈속에서의 황홀함이나 두려움 따위는 현실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중, 등 뒤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엘레나.”
그녀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제의 남자가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그는 여전히 긴 흑발을 늘어뜨리고 있었으며,
날렵한 몸매와 붉은 눈동자가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를 얼어붙게 만든 것은 그의 시선이었다.
너무도 강렬한 소유욕이 담긴 시선.
“넌 내 짝이니까.”
엘레나는 공포에 질린 듯 뒷걸음질 쳤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녀를 압도하는 듯했다.
“아니야. 난 당신을 몰라.”
그녀는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는 한 걸음 다가오며 단호하게 말했다.
“달이 널 선택했어.”
그 순간,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엘레나! 저 자가 누구야?”
마을 사람들은 루시안을 바라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를 괴물이라며 손가락질했고,
몇몇은 서둘러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저 남자의 눈을 봐! 붉은 눈이야. 저건 인간이 아니야!”
위기감을 느낀 엘레나는 본능적으로 루시안에게서 멀어졌다.
공포와 혼란이 뒤섞여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제발… 날 내버려 둬.”
그러나 루시안은 그녀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망쳐도 소용없어.”
엘레나는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공포심에 차서 무기를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황급히 몸을 돌려 도망쳤다.
뒤에서 마을 사람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을 쫓아내야 한다!”
그러나 루시안은 요동치는 군중을 신경 쓰지 않고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달이 우리를 묶어버렸으니까.”
그 말이 무섭도록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는 듯, 오직 앞으로만 달려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린 엘레나는 마침내 마을 외곽에 다다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숙였다.
그런데, 숲속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다시 나타났다.
“어떻게…!”
그녀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루시안이 조용히 다가왔다.
그의 움직임은 너무도 부드러웠고, 야수의 본능이 느껴졌다.
“도망친다고 널 놓아줄 거라 생각했어?”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이었지만,
어딘가 서글픈 울림이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감쌌다.
손목에 새겨진 달의 문양이 더욱 강하게 빛났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