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는 그의 손을 떨쳐내려 했지만,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무섭도록 익숙한 감촉이었다.
어째서일까, 그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녀 곁에 있었던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나를 쫓아오는 거야?”
루시안의 붉은 눈동자가 깊어졌다.
“넌 내 짝이니까.”
그의 손이 그녀를 놓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운명이, 어쩌면 이 남자와 영원히 엮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손목을 뿌리치고,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루시안의 마지막 말이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 밤이 끝나면, 다시 너를 찾을 거야.”
그녀는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가, 마치 그녀를 영원히 놓지 않겠다는 듯이.
차가운 새벽 공기가 엘레나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숲이 고요해진 후에도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루시안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가 떠난 걸까? 아니면 어둠 속 어딘가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을까?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마을로 향했다.
더 이상 늑대와 마주할 일은 없어야 했다.
하지만 손목에 새겨진 문양은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음 날, 엘레나는 마을의 광장에서 물건을 정리하며 어제의 일을 지우려 애썼다.
하지만 깊은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엘레나.”
그녀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굳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루시안이 마을 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어제처럼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으며,
붉은 눈동자는 한층 더 강렬한 빛을 띠고 있었다.
“왜… 여기에…?”
그녀는 당황한 듯 한 걸음 물러났다.
“네가 도망칠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널 놓아줄 거라고 착각하진 않았겠지.”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를 들키면 위험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무언가 대답하기도 전에,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중앙으로 말을 탄 병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황제의 문양이 새겨진 깃발이 펄럭였다.
“황제의 칙서를 전한다!”
광장이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병사들은 말을 멈추고 두루마리를 펼쳤다.
“성녀의 증표가 나타났다. 즉시 황궁으로 오라.”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성녀의 증표? 엘레나는 황급히 손목을 가렸다.
그녀가 도망치려 했지만 병사들 중 하나가 그녀를 가리켰다.
“저 여자다!”
모두의 시선이 엘레나에게 집중됐다.
그녀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설마… 문양이 보였던 걸까?
그러나 그 순간, 루시안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붉은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녀를 데려가려는 거냐.”
병사들은 그를 경계하며 검을 뽑았다.
“너는 누구냐? 황제의 명을 방해하지 마라.”
루시안은 미소를 지으며 낮게 말했다.
“그녀는 내 것이다. 아무도 그녀를 건드릴 수 없어.”
그의 목소리는 마치 포효와도 같았다.
주변의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병사들은 한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황제의 명령을 따르려 검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강한 바람이 불었다.
루시안이 한 걸음 내디디자,
마치 자연이 그를 돕는 듯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그의 존재감이 무겁게 짓눌렀고, 늑대의 본능적인 위압감이 온 마을을 휩쓸었다.
엘레나는 숨을 삼켰다.
루시안이 인간의 탈을 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병사들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을에 긴장된 침묵이 감돌았다.
엘레나는 점점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며, 병사들조차 혼란에 빠진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황궁으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루시안과 함께 남을 것인가?
그때, 병사들 중 한 명이 주저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황제께서 명하신 바다. 성녀를 모셔가야 한다. 그녀가 거부하더라도… 반드시.”
그 말이 끝나자, 몇몇 병사들이 검을 더욱 단단히 쥐고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루시안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들이 감히 그녀를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그 순간, 바람이 다시 한번 세차게 몰아쳤다.
병사들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남자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