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전투는 아수라장이었다.
늑대들은 날렵하게 움직이며 병사들을 위협했고,
병사들은 방패를 들어 방어하며 필사적으로 반격했다.
엘레나는 혼란 속에서 몸을 움츠린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검은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루시안은 그 중심에서 날렵하게 움직이며 적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 역시 훈련된 전사들이었다.
숫적으로 우세한 병사들은 점차 대열을 정비하며 반격을 시작했다.
한 병사가 소리쳤다.
“성녀님을 보호하라! 황궁까지 무사히 모셔야 한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엘레나를 둘러싼 병사들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방패를 세웠다.
그러자 루시안이 이를 가로막으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녀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지?”
그의 목소리는 깊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병사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의 대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황제 폐하께서 명하셨다! 그녀는 성녀로서 황궁에 있어야 한다!”
루시안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에는 냉랭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네 황제가 그녀를 보호할 거라고 믿는 건가?”
그 순간, 더 많은 병사들이 숲속에서 도착하며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루시안의 늑대들도 수적 열세를 깨닫고 서서히 후퇴했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황궁으로 가겠다면….”
그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붉은 눈동자가 강렬하게 빛났다.
“그럼 내가 널 반드시 되찾으러 갈 거야.”
그 말과 함께, 루시안과 그의 늑대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엘레나는 얼어붙은 채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황궁에 도착한 엘레나는 긴장된 얼굴로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높은 탑과 웅장한 문이 그녀를 압도했다.
마을에서 고작 약초를 캐며 살아가던 그녀가,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병사들은 그녀를 안내하며 말없이 앞장섰다.
황궁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조각들이 그녀의 시야를 채웠다.
귀족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궁정을 거닐었고,
하인들이 조용히 움직이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성녀님, 이쪽으로.”
엘레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병사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존재가 궁정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호기심과 경계가 섞인 시선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드디어 황제의 대전 앞에 도착했을 때,
두 개의 거대한 문이 열리며 황제의 위엄이 그녀를 짓눌렀다.
“달이 선택한 성녀, 엘레나.”
황제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엘레나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숙였다.
“저를 부르셨다 하여 왔습니다.”
“네가 정말 성녀라면, 이 제국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겠구나.”
황제의 말에 귀족들이 술렁였다.
엘레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는 달의 문양이 있었다.
황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이제 황궁의 보호 아래 있다.
네 부모님의 빚도 모두 갚아줄 것이며,
이곳에서 원하는 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녀는 그의 말이 선심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감시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황궁이 그녀에게 안식처가 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황금빛 새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날 밤, 엘레나는 궁정에서 마련해준 화려한 방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마을에서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공간이었지만,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
창문 너머로 달빛이 은은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엘레나.”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창문이 조용히 열려 있었고, 어둠 속에서 루시안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강렬하게 빛났다.
“루시안…?”
그녀는 숨을 삼켰다.
그가 어떻게 황궁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걸까?
경비가 삼엄한 이곳에?
“이곳에 있으면 네가 위험해진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떠나야 해.”
엘레나는 한걸음 물러났다.
“그럴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