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한동안 서진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다짐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그녀의 행복을 바란다고 해도, 그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처럼 억지로 붙잡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도록, 그는 마지막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날 저녁, 서진은 도윤에게 연락을 했다. 짧고 간결한 메시지였다.
[시간 좀 괜찮아요?]
도윤은 메시지를 보자마자 답장을 보냈다.
[어디로 가면 될까?]
한적한 카페, 예전에도 둘이 자주 앉았던 창가 자리에 서진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단호했지만, 미묘한 불안이 엿보였다.
도윤이 자리에 앉자 서진은 조용히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이혼 서류예요.”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도윤은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생각 끝난 거야?”
도윤은 담담하게 물었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너무 오래 끌었어요. 이젠 각자의 길을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도윤은 조용히 서류를 받아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분노나 절망으로 그녀를 붙잡았겠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서류를 넘겼다.
서진은 그가 서명하는 순간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도윤이 정말로 아무런 미련도 없이 떠나려 하는 걸까?
그가 펜을 들었을 때, 문득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펜 끝이 서류 위를 스치려는 순간,
도윤이 문득 멈췄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너무도 깊었다.
“이게 네가 원하는 거라면, 받아들일게.”
서진은 한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는데도,
도윤이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과거의 그는 결코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늘 서진을 붙잡고, 밀어붙이고, 어떻게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그녀의 선택을 온전히 존중하고 있었다.
‘그가 정말 변했어…’
그 변화가 진짜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왜일까? 왜 가슴이 이렇게 조여 오는 걸까?
서진은 순간적으로 입을 열려 했지만,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윤이 마지막으로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더니, 웃었다.
“이제 끝이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한 결론을 담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 서진은 깊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정말 끝인 걸까? 다시는 도윤을 볼 수 없는 걸까?
하지만 입 밖으로 그를 붙잡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해서일까?
“그래요. 이제 각자의 길을 가야죠.”
그녀는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속은 복잡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도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혼 서류를 정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바라본 후, 묵묵히 카페 문을 나섰다.
그가 사라진 후에도 서진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차가운 커피잔을 손에 쥔 채, 창밖을 바라보며 깊이 생각했다.
그는 정말 떠난 걸까? 이번에는 정말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서진은 혼란스러웠다.
도윤이 그녀를 붙잡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그가 떠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감정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텅 빈 마음을 안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있던 서진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도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행복했던 순간도, 아팠던 순간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집 앞에 도착한 그녀는 문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손끝이 떨렸다.
만약 도윤이 이번에도 떠나버린다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몰랐다.
결국 그녀는 휴대폰을 열어 도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도윤씨?]
보내고 나서 한참 동안 답장을 기다렸다.
하지만 도윤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서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번에는 그녀가 도윤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