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 성우는 유리아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자신과 처음으로 사귀게 된 것이 유리아라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온통 미스터리 투성이인 그녀의 말들이 자꾸 성우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떠다녔다.
‘지구에서 500번을 환생한 대현자라고?’
그럴 리가 없다. 사람이 환생을 한다고?
설령 그런 일이 있다 해도, 기억까지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분명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고를 피하게 해주고, 사기꾼을 한눈에 간파하고, 아이템 시세까지 정확히 맞추다니…
성우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따뜻한 커피잔을 손에 쥐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유리아였다.
[내일 저녁에 시간 되세요? 우리 다시 만날래요?]
성우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네, 어디서 만날까요?]
유리아의 답장은 간단했다.
[이번엔 조금 색다른 곳으로 가보죠.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성우는 문자를 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그녀가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이번에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 것인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유리아가 궁금했다. 그녀가 진짜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새로운 만남, 그리고 의문의 장소
다음 날 저녁, 성우는 유리아가 보내준 장소로 향했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 고즈넉한 분위기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무 향과 함께 차분한 공기가 감돌았다.
책장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유리아였다.
그녀는 한 권의 두꺼운 책을 펼쳐 들고 있었고, 성우를 보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셨네요.”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어요.”
유리아는 책을 덮으며 자리를 권했다.
“책을 좋아하세요?”
성우는 좌석에 앉으며 멋쩍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게임 공략집이나 보는 편이죠.”
유리아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책은 단순한 활자가 아니에요. 많은 생을 거듭하면서 남겨진 지혜의 흔적이죠.”
그녀는 잠시 성우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왜 여기에 초대했을까요?”
성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모르겠어요. 하지만 당신이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뭔지는 궁금하네요.”
유리아는 그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 성우가 표지를 보니,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적혀 있었다.
“이게 뭔가요?”
“제가 이전 생에서 남긴 기록 중 하나예요.”
성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이거 직접 썼다고요?”
유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기록된 건,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환생을 거듭하며 얻은 깨달음들이에요.”
성우는 황당하면서도 호기심이 동했다. 책장을 천천히 넘기며 유리아를 바라보았다.
“이걸 보면 내가 당신을 믿게 될까요?”
유리아는 조용히 대답했다.
“믿을 준비가 된다면, 그럴 수도 있죠.”
진실을 마주할 준비
성우는 책장을 넘기며 페이지 곳곳에 적힌 내용을 주의 깊게 읽었다.
언뜻 보기에 하나의 철학적 에세이 같았지만, 곳곳에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마치 한 시대를 살아본 사람만이 기록할 수 있는 듯한 디테일이었다.
그는 숨을 삼켰다.
“이걸 읽고 나면… 난 뭘 알게 될까요?”
유리아는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건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그녀의 말은 마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성우는 더 깊이 알아보고 싶었다. 그녀의 환생 이야기, 그녀가 말하는 ‘진실’이 과연 무엇인지.
유리아가 다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성우 님, 이제 정말 중요한 질문을 해보세요. 당신이 가장 궁금한 것, 알고 싶은 것. 무엇이든.”
성우는 입을 열려다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결심한 듯 말했다.
“그럼… 당신은, 다음 생에서도 저를 기억할 건가요?”
유리아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성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도, 그렇겠죠.”
그 말이 성우의 마음 깊은 곳에 묘한 감정을 남겼다. 하지만 그녀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이번생이 이 곳에서의 마지막 생이 될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