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데라 왕궁의 연회장은 찬란한 황금빛 촛불 아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연회에 초대된 귀족들이 조용히 웅성거리며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오늘 밤의 초대 손님, 몬테로즈 제국의 대공 사브리엘 드 몬테로즈.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왕세자 레아(레온)는 연회장의 중심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밤, 그가 무슨 말을 꺼낼지 알아내야 해.'
사브리엘이 걸음을 멈추고,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왕세자 전하께 인사를 올립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감춰진 날카로움을 레아는 놓치지 않았다.
"환영합니다, 대공."
그녀는 단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사브리엘은 그 손을 잡으며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순간, 사브리엘이 손을 쥔 힘이 미세하게 강해졌다.
"왕세자 전하는 손이 참 곱군요."
순간적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지? 지금 나를 떠보는 건가?'
그러나 레아는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제국에서는 상대를 처음 만날 때 손을 오래 붙잡는 게 예의인가요?"
사브리엘이 피식 웃으며 손을 놓았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연회장은 마치 전장과도 같았다.
연회가 진행되는 동안, 레아와 사브리엘은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칼데라는 언제 봐도 아름다운 나라군요." 사브리엘이 와인을 홀짝이며 말했다.
"대공께서 제국에서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는데, 벌써 이 나라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신 듯하군요."
사브리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특히 왕세자 전하께 깊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저에게요?"
"네. 왕세자 전하께서는 흥미로운 분이니까요."
레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대공께서 저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아닙니다. 단순한 호기심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사브리엘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왕세자 전하를 보면 이상하게도, 묘한 위화감이 들거든요."
순간, 레아의 온몸이 굳었다.
사브리엘은 그녀의 반응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역시 이 남자, 뭔가 눈치챘어.'
그러나 그녀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대공께서는 너무 깊은 생각을 하시는군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사브리엘의 시선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연회가 끝난 후, 루카스가 다가왔다.
"전하, 대공과 너무 가까이 있는 건 위험합니다."
레아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니야."
루카스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는… 그에게서 어떤 위협을 느끼고 계십니까?"
레아는 침묵했다.
'위협이라기보다는… 경고 같아.'
사브리엘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