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불타오르듯이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제국군이 붉은 숲의 깊은 곳까지 밀려들었고,
카시아와 붉은 용, 그리고 레이건과 그의 부하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붉은 용이 하늘을 가르며 불길을 내뿜었고,
그 불꽃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러나 가장 큰 위험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오고 있었다.
제국군과 맞서 싸우던 레이건의 친위대 중 일부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천천히 그의 방향을 향해 검을 돌렸다.
그들의 눈빛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
들은 여전히 황제에게 충성하고 있었다.
"공작님."
한 병사가 검을 빼 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의 명령을 어길 작정이십니까?"
레이건은 그들을 바라보며 한순간 침묵했다.
그들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몇 년, 아니 몇십 년 동안 함께 싸워온 전우들.
그들은 언제나 황제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믿어 왔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레이건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황제 카이로스 발렌티스는 왕좌에 앉아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눈앞의 전장에서 벌어지고 있을 전투 따위는
이미 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는 오로지 한 가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카시아.
그녀와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었다.
몇 년 전, 황제는 신하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붉은 숲에서 용과 교감하는 한 이단자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당시, 그는 단순한 반역자 처리 문제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숲으로 향했던 그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안개가 자욱한 붉은 숲 한가운데,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고,
긴 은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녀의 앞에는 붉은 용이 있었다.
그리고 그 용은 마치 그녀의 수호자라도 되는 듯 그녀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황제는 믿을 수 없었다.
용이 인간에게 무릎을 꿇다니.
"당신이 황제군을 이끌고 직접 왔군요."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황제 앞에서도 당당하게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도리어 그를 매료시켰다.
그러나 황제를 더욱 사로잡은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이었다.
흐트러짐 없는 기품,
달빛 아래에서도 빛나는 창백한 피부,
깊이를 알 수 없는 보랏빛 눈동자.
마치 신이 직접 조각한 듯한 얼굴.
하지만 단순한 미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단순한 육체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강렬했다.
그녀는 그 어떤 여인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황제는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여인은, 그녀는 내 것이 되어야 한다.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욕망이 피어올랐다.
단순히 그녀를 무릎 꿇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소유하고 싶었다.
"너희는 나와 함께 싸워온 동료들이었다."
레이건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제 나를 배신하는 건가?"
"배신이 아닙니다, 공작님."
다른 병사가 말했다.
"황제께서 당신을 돌이킬 기회를 주셨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시면, 폐하께서 용서하실 겁니다."
카시아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서늘했다.
"당신들은 아직도 황제가 자비로운 존재라고 믿고 있나요?
그가 나를 잡아들이면, 내가 단순히 생포되는 것에서 끝날 거라고 생각합니까?"
병사들은 미묘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렸지만,
여전히 검을 거두지 않았다.
레이건은 천천히 검을 빼 들었다.
그는 선택해야 했다.
자신이 수십 년간 섬겨온 황제의 뜻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눈앞의 여인을 지킬 것인가.
그리고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너희가 충성을 바치는 황제는 탐욕스러운 자일 뿐이다."
레이건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칼이 아니다."
그 순간, 그의 친위대 중 몇몇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이 한 발짝 물러섰다.
하지만 여전히 절반은 검을 들고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렇다면, 공작님. 당신은 이제 반역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