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충견이라 불리는 레이건 블랙울프 공작은 황제의 명을 받고 붉은 숲으로 향한다. 그는 그곳에서 마녀라 불리는 카시아와 그녀가 길들이는 붉은 용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를 처단해야 하는 사명 앞에서, 레이건은 묘한 이끌림을 느끼게 되는데…
하늘에는 검푸른 구름이 두텁게 깔려 있었고,
그 아래로 황궁의 위엄 넘치는 실루엣이 드리워져 있었다.
회색빛 대리석으로 지어진 제국의 중심, 발렌티스 황궁.
그곳은 인간이 만든 성채 중 가장 크고 웅장했으며,
위대한 제국의 힘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성벽 위로 휘날리는 금색 깃발에는 황제의 상징인 쌍두독수리가 새겨져 있었다.
레이건 블랙울프 공작은 깊고 차가운 눈빛으로 황궁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한 번도 황제의 부름을 거절한 적이 없는 충직한 기사였고,
전장의 승리자로 불렸다. 그의 검이 향하는 곳마다 피가 흐르고,
승전의 깃발이 꽂혔다. 그러나 오늘, 그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황제 카이로스 발렌티스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맞이했다.
왕좌 뒤로 펼쳐진 붉은 비단 장막이 마치 피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황제의 얼굴에는 냉정한 미소가 떠올랐다.
"레이건 블랙울프, 네게 새로운 임무를 내린다."
황제의 손짓에 따라, 대신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 안에 적힌 내용은 단순했으나,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붉은 숲의 이단자를 굴복시키고 황궁으로 데려와라.
레이건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붉은 숲. 그곳은 수백 년 동안 제국의 손길이 닿지 않은 금단의 영역이었다.
그곳에는 신화 속 존재인 용이 살고 있으며,
인간이 아닌 존재가 지배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황제는 그런 장소에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폐하, 붉은 숲의 이단자라 함은..."
"카시아라는 여인이다."
황제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여자는 용과 교감하며, 제국을 거부했다.
우리가 인간의 지혜와 법으로 다스리는 이 땅에서,
그녀는 이방인의 존재를 꿈꾼다.
제국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땅이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레이건은 황제의 눈빛에서 다른 감정을 읽어냈다.
그것은 탐욕이었다.
황제는 카시아가 단순한 이단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제국을 거부한 반역자가 아니라, 황제가 손에 넣고 싶은 존재였다.
그녀는 신비롭고 아름다웠으며, 무엇보다 용을 길들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는 카시아의 힘을 원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존재를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황제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네가 가서 그녀를 굴복시키고, 황궁으로 데려와라.
그녀의 능력은 제국이 가져야 할 힘이다."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레이건의 가슴속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일었다.
그는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번 임무는 단순한 살육이 아니었다.
그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이 명령 뒤에 숨겨져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명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붉은 숲으로 떠났다.
붉은 숲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검은 호수를 건너고, 황량한 평원을 지나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숲 자체가 그들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안개가 짙게 깔린 숲속은 낮에도 어두웠고,
나무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몸을 뒤틀고 있었다.
"공작님, 이곳은..."
부관이 말을 잇지 못했다. 나뭇잎이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마치 나무 전체가 피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이 숲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차갑고, 무겁고,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들의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공기가 단숨에 무거워졌고,
마치 대지가 울부짖는 듯한 낮고 깊은 굉음이 숲을 가로질렀다.
바람이 요동치며 나뭇잎들이 거센 폭풍에 휩쓸리듯 흔들렸다.
붉은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의 거대한 날갯짓이 공기를 가르고,
날카로운 포효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심판처럼, 용의 존재는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 비늘은 태양을 머금은 듯 황금빛으로 빛났고,
붉은 눈동자는 인간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용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숲의 주인이었고, 신화 속 존재였다.
그리고 용의 등 위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깊은 자주빛 로브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전설 속에서 걸어 나온 존재처럼 신비로웠다.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태고의 비밀을 담고 있는 듯한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황제가 보낸 사냥개인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레이건은 그녀를 바라보며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녀는 단순한 마녀가 아니다. 이곳의 주인이다.
그는 검을 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낯선 감정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용은 괴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를 죽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 순간, 레이건의 운명이 바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