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현은 다음 날 아침, 거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
술기운에 감정이 솔직해졌던 걸까.
아니면 더는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달아서였을까.
어쨌든 그는 도현 앞에서 솔직한 감정을 인정했다.
하지만 도현은 여전히 가벼운 농담처럼 받아들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게 다행일까, 아니면 아쉬운 걸까.
헬스장에 도착하자마자, 이현은 도현과 마주쳤다.
도현은 언제나처럼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선배, 어제 많이 취했어요?"
"……취하진 않았다."
"그럼 어제 한 말도 다 기억하겠네요?"
이현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그걸 물어보는 도현의 표정은 어딘가 장난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현은 최대한 무덤덤한 척하며 대답했다.
"……그냥 흘려들어라."
그러자 도현은 피식 웃었다.
"못 흘려들어요."
"……"
"선배가 그렇게 솔직한 말 해준 건 처음이었는데, 내가 어떻게 무시해요?"
이현은 애써 시선을 피했다.
‘이 녀석은 어떻게 이렇게 당당할까.’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몰아붙이는 게 능숙했다.
도현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럼 오늘부터 우리 뭐가 되는 거예요?"
이현은 황당하다는 듯 도현을 바라봤다.
"뭐가 되긴, 그냥 그대로지."
"그냥 그대로요?"
도현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그럼 선배는 계속 도망칠 거예요?"
이현은 도현을 똑바로 바라봤다.
도망치지 않겠다고 한 건 자신이었다.
하지만 막상 도현이 확실한 대답을 요구하자, 또다시 망설였다.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자 도현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알려줄게요."
이현이 반응할 틈도 없이, 도현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현은 그 순간 모든 게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도현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에 닿았다.
"……!"
이현은 반사적으로 밀어내려 했지만,
도현이 한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 가볍게 눌렀다.
짧지만 확실한 입맞춤이었다.
이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입술이 떨어지고, 도현이 살짝 웃으며 속삭였다.
"이제 알겠어요?"
이현은 도현을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거부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 후회하지 마라."
결국, 이현은 그렇게 대답했다.
도현은 기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야말로요."
그날 이후, 이현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도현은 언제나처럼 다가왔고, 이현도 더는 밀어내지 않았다.
물론, 이현답게 쉽게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현은 그런 이현의 반응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리 이제 연애하는 거죠?"
"……네가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 그런 거겠지."
"뭐야, 나만 혼자 신났잖아."
도현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러자 이현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네가 좋다는 건 사실이야."
도현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선배, 방금 뭐라고 했어요?"
"……별거 아니야."
"아니, 별거 아닌 게 아닌데요?"
도현이 신난 듯이 웃으며 이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제 선배가 내 거 맞죠?"
이현은 도현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 결국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도현은 환하게 웃으며 이현을 꼭 끌어안았다.
이현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결국은 그 품을 받아들이며 작게 속삭였다.
"...더우니까 좀 떨어지지?"
"왜 그래요? 얼굴 빨개졌으면서.."
이현은 결국 고개를 돌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한테 졌다, 진짜."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패배는 싫지 않았다.
도망치려 했던 감정에 스스로 걸려 넘어졌지만, 이미 늦었다.
도현이 그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고, 이현도 이제는 그 품이 싫지 않았으니까.
[완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