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현은 짙은 커피 한 모금을 머금었다. 아침부터 잔뜩 쌓인 보고서를 훑어보며
피로한 눈을 가늘게 뜬다.
“차장님, 요즘 건강 괜찮으세요?”
옆자리의 후배가 슬며시 말을 걸어왔다.
이현은 잠시 시선을 돌려 후배를 바라봤다. 관심은 고맙지만,
대답은 언제나와 같았다.
“괜찮아.”
“그게 아니라, 너무 야근하시고 스트레스도 많으신 것 같아서요.
요즘 피곤해 보이세요.”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후배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요, 제가 PT 등록했어요. 헬스장인데요,
엄청 유명한 트레이너가 계시거든요.”
이현은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서류에서 시선을 뗐다.
“PT?”
“네! 그냥 가서 운동만 하시면 돼요. 다 알아서 해주신다니까! 건강 좀 챙기셔야죠.”
그렇게 시작된 헬스장 방문이었다.
이현은 바쁜 업무 사이에서 헬스장을 찾았다. 솔직히 말해, 기대도 없었다.
운동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고, 바쁜 일정 속에 시간을 내는 것도 귀찮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트레이너는, 생각보다 훨씬…… 낯선 존재였다.
헬스장에 들어서자, 깔끔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한 남자가 이현에게 다가왔다.
키가 크고 탄탄한 체격, 선명한 이목구비와 자연스러운 미소를 가진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강이현 고객님. 오늘부터 트레이닝을 맡게 된 차도현입니다.”
이현은 무심한 태도로 도현의 손을 가볍게 잡고 놓았다.
그가 이렇게 친근하게 웃을 이유가 있을까?
“잘 부탁합니다.”
도현은 흥미로운 듯 이현을 훑어보았다.
“선배는 몸이 너무 굳어 있어요. 긴장 좀 푸세요.”
이현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선배?”
“네! 같은 대기업 다니시잖아요. 저도 거기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트레이너 하고 있어요. 후배분이 소개해 주셨죠.”
이현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한 트레이너와 고객의 관계라면 거리감을 둘 수 있었겠지만,
후배까지 엮였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선배라고 부르는 건가?”
“음…… 그냥 편하게 불러도 되나요?”
도현의 표정이 장난스럽게 변했다.
가벼운 말투와 행동이 이현의 성향과는 너무 달랐다.
“편하게 불러도 되지만, 나는 원하지 않아.”
이현이 차갑게 선을 긋자,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오, 철벽 치시는 타입이구나.”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서 운동을 끝내고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운동이 시작되자, 이현은 금방 후회했다.
도현은 예상보다 훨씬 혹독한 트레이너였다.
“허리 펴시고, 가슴 앞으로.”
도현이 이현의 뒤에서 자세를 잡아주려 가까이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등 뒤에서 느껴지는 체온에 이현은 움찔했다.
“……혼자 할 수 있어.”
“그러다 허리 다쳐요.”
도현이 태연하게 말하며 손을 뻗어 이현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며 자세를 잡아줬다. 이현은 불편했지만, 억지로 참고 지시에 따랐다.
“좋아요. 근데 선배, 너무 딱딱해요. 회사에서도 이렇게 살아요?”
이현은 헬스장 거울을 통해 도현을 노려봤다.
“너는 고객한테 다 이렇게 말해?”
“아뇨. 선배한테만요.”
도현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했다.
이현은 순간적으로 그를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인간으로 분류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였다.
운동이 끝날 때까지 도현의 말장난은 계속되었고, 이현은 점점 피곤해졌다.
도현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다음 시간도 기대할게요, 선배.”
이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한 운동이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피로가 더 심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 몰랐다.
순한 양처럼 보이던 도현이, 사실은 천천히 사냥감을 길들이는 늑대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