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마치고 샤워실에서 나오는 강이현은 머리를 털며 헬스장의 거울을 스쳤다.
그곳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여전히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차도현이라는 존재가 신경 쓰인다.
‘그냥 트레이너일 뿐이야. 굳이 반응할 필요 없어.’
그러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도현은 선을 넘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날, 이현은 평소처럼 사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후배가 슬며시 다가와 속삭였다.
“차장님, 트레이너님이 회사 근처에서 봤대요.”
“……뭐?”
“아, 우연히 지나가다 봤나 봐요.
근데, 선배님 점심시간에 헬스장 오실 수 있냐고 물어보시던데요?”
이현은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도현에게 온 메시지가 있었다.
[차도현] 점심 같이 먹을래요, 선배? 헬스장에서 기다릴게요.
이현은 망설였다. 그러나 거절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어차피 점심시간을 혼자 보내는 날이 더 많았다.
[강이현] 알았다.
헬스장 근처 카페에서 마주 앉은 두 사람.
도현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이현을 바라보았다.
“선배, 회사에서는 되게 차갑네요.”
“헬스장에서는 따뜻해 보였나?”
“음, 최소한 날 밀어내진 않았죠.”
이현은 아무 말 없이 커피를 홀짝였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도현은 계속해서 거리감을 좁혀왔다.
“선배, 난 원래 이렇게 직진하는 성격이에요.”
이현은 살짝 고개를 들어 도현을 바라봤다.
“너한테 내가 어떤 의미가 있는데?”
도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선배가 좀 더 알아봤으면 좋겠어요.”
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녀석, 더 가까이 오겠지.’
그리고 그는 그것이 불편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몇 주가 지나도 도현은 꾸준히 연락을 했다.
이현은 밀어내려고 했지만, 도현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이 끝난 늦은 밤. 이현은 평소보다 과음을 했고,
홀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차도현] 지금 어디세요?
이현은 술기운이 올라와서인지 답장을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무시했다.
그런데 몇 분 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
놀라 돌아보니 도현이 서 있었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선배가 혼자 집 가는 거 싫어서요.”
“……나 애도 아니고.”
“그래도 혼자 걷기엔 위험한 시간이에요.”
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현이 다가와 자연스럽게 팔을 잡았다.
“택시 타고 가요.”
그 손길이 따뜻했다. 이현은 밀어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도현의 손에 이끌려 택시에 올라탔다.
도현이 자연스럽게 목적지를 기사에게 말했다.
“선배 집으로요.”
이현은 한숨을 쉬며 창밖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입가엔 알 수 없는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이 녀석, 정말 쉽지 않아.’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