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현은 스스로를 변명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관심일 뿐이라 생각했다.
운동을 받으면서 생긴 일시적인 감정이라고도 여겼다.
하지만 차도현이 집요하게 다가올수록,
이현이 그를 신경 쓰는 빈도는 점점 늘어났다.
특히, 도현이 "언제까지 도망칠 거예요?"라고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이현은 평소처럼 차분한 척했지만, 사실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 상황을 원했던 걸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감정에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헬스장에 도착한 이현은 도현과 마주쳤다.
도현은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와 이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선배, 오늘은 조금 가볍게 할까요?”
이현은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마음과 달리 오늘따라 도현의 손길이 더 신경 쓰였다.
운동 중에도 도현은 이현의 팔을 잡고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평소에도 했던 행동이었지만, 오늘따라 그 손길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선배, 몸에 너무 힘 들어갔어요."
"……알았어."
이현은 도현의 손을 살짝 밀어내려 했지만, 도현은 가만히 이현을 바라보았다.
“선배, 나 아직 포기 안 했어요.”
“……너, 무슨 말이야.”
"모르겠어요?"
도현이 살짝 웃으며 이현의 귀에 속삭였다.
"이제 선배 차례예요.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확실히 거절하든가."
이현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운동이 끝나고도 이현은 계속 도현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받아들이든가, 확실히 거절하든가.’
이제 더는 애매한 태도로 도현을 대할 수 없었다.
헬스장을 나서려던 순간, 도현이 이현을 붙잡았다.
"선배, 잠깐만요."
"왜?"
도현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오늘 밤, 술 한잔할래요?"
이현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술집은 조용한 분위기의 바(Bar)였다.
도현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으며 이현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선배, 원래 술 잘 마셔요?"
"……보통은 잘 안 마시지."
"그럼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좀 마셔도 되겠네요."
"특별한 날?"
도현은 가만히 이현을 바라보며 웃었다.
"선배가 드디어 나랑 술 마시러 나왔으니까."
이현은 한숨을 쉬며 술잔을 들었다.
"그렇게까지 의미 부여할 필요는 없지 않냐."
"내가 의미 부여 안 하면, 선배가 안 하잖아요."
도현의 말에 이현은 순간 멈칫했다.
‘도현은 계속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물러서기만 했다.’
그 순간, 도현이 이현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선배, 솔직해지면 안 돼요?"
"……"
"내가 이렇게까지 다가오는데, 선배도 이제 답을 줘야죠."
이현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도현을 바라봤다.
"……나도 너한테 마음이 가는 건 사실이야."
도현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근데……"
이현은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너처럼 쉽게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야.
네가 이렇게 다가올수록, 오히려 더 무서워."
도현은 이현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냥… 나한테 시간을 좀 주면 안 되겠냐."
그러자 도현이 미소를 지었다.
"선배, 이제야 솔직해졌네요."
이현은 멋쩍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제 좀 덜 밀어붙일 거냐?"
도현은 잔을 들어 이현과 부딪히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이현은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그날 밤, 이현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이제 더는 도망칠 수 없겠지.’
이미 도현은 충분히 가까이 와 있었다. 그리고 이현은 이제야 그를 뿌리치지 않았다.
‘이걸 받아들이면, 어떤 관계가 될까?’
답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이제 이현도 알고 있었다.
차도현을 신경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늑대의 울타리에 갇힌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이현은 그 감옥이 싫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