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대학생 정수진.
그녀의 하루는 전공 수업과 아르바이트, 그리고 논문 준비로 가득 차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그녀는 우연히 오래된 골동품 가게를 발견하게 된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수진은 도서관에서 과제 조사를 마친 후,
우산을 쓰고 학교 근처의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낡은 나무 간판이 달린 작은 가게를 발견했다.
‘운명의 골동품’이라고 쓰인 간판은 빗물에 절어 희미하게 빛났다.
왠지 모르게 끌리는 느낌에 수진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했다.
낡은 시계, 고풍스러운 가구, 빛바랜 서적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독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 놓인 작은 손목시계.
그것은 마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오묘한 광택을 띠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진열장 문을 연 순간, 가게 주인이 다가왔다.
“이 시계가 마음에 드십니까?”
수진은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주인은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었고, 그의 눈빛은 깊은 비밀을 간직한 듯 신비로웠다.
“네… 이 시계는 얼마인가요?”
그녀가 묻자,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시계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계가 당신을 선택한 것뿐이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수진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주인은 천천히 그녀의 손에 시계를 쥐여 주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끝을 스칠 때, 순간적으로 이상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주의하십시오. 이 시계는 시간을 지배하는 물건이오.”
수진은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시계를 손목에 찼다.
순간, 시계의 표면이 눈부시게 빛났다.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듯 흔들렸고, 강한 압력이 몸을 짓누르는 듯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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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주변이 낯설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한약 냄새, 기와 지붕이 줄지어 있는 거리,
한복을 입고 걸어가는 사람들. 말소리도, 풍경도, 모든 것이 현대가 아니었다.
“여긴… 어디지?”
수진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있던 골동품 가게는 온데간데없고, 그녀는 낯선 거리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저 여인 차림이 이상하구먼.”
“정말이네. 도령의 옷을 입은 것도 아니고, 여인의 한복도 아니야.”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수진은 그제야 자신의 복장이 현대식 청바지와 후드티라는 걸 깨달았다.
한양의 거리 한복판에서 너무나도 눈에 띄는 차림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이곳이 과거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이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때였다.
“길을 비켜라.”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진이 고개를 돌리자, 검은 갓을 쓴 남자가 군중 사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높은 벼슬이라도 가진 듯, 주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터주었다.
한복 차림이었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태도와 강렬한 눈빛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그 남자는 수진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상한 옷을 입은 낯선 여인이군.”
수진은 당황했지만, 본능적으로 그에게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여기서 나갈 방법을 아시나요?”
그 남자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마치 그녀의 말을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시오.”
수진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가 안내한 곳은 한적한 골목 안에 자리한 기와집이었다. 그는 마루에 앉으며 차를 한 잔 따랐다.
“이제 말해 보시오. 당신은 누구요?”
수진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과거에 왔다는 걸 믿어야 할까? 그리고 이 남자는 대체 누구일까?
“제 이름은 정수진입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죠?”
남자는 그녀를 한동안 지켜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양이오. 조선 시대의 수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수진의 손목에 찬 시계가 다시금 희미하게 빛났다.
마치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예고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