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는 강지훈과의 만남 이후 며칠 동안 감정을 정리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는 게임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이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느 날, 회사에서 강지훈이 주도하는 새로운 VR 프로젝트 회의가 열렸다.
윤하는 회의실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시선을 느꼈다.
평소와 다름없이 냉철한 태도로 회의를 이끌고 있었지만,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순간적으로 부드러워지는 듯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의 VR 시스템보다 한 단계 발전한 기술이 적용됩니다.”
그가 발표를 이어가자 윤하는 무심코 그를 바라보았다.
게임 속에서 그녀를 보호하고 이끌던 제이든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의 말이 끝나고 질의응답이 이어졌지만, 윤하는 내내 생각에 잠겨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강지훈이 윤하에게 다가왔다.
“윤하 씨,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의 목소리는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어조였지만,
그녀는 그 속에서 묘한 따뜻함을 느꼈다. 두 사람은 회사 옥상으로 향했다.
“요즘 나를 피하는 것 같아.”
그가 솔직하게 말을 꺼내자, 윤하는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생각할 게 많아서.”
강지훈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기다릴 수 있어. 하지만 확실히 하고 싶어.
우리 관계가 게임 속에서만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윤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에 가슴이 뛰었다.
게임과 현실 사이에서 계속 고민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는 처음부터 변함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자신만 혼자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럼, 게임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계속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강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그 순간, 윤하는 자신이 더 이상 도망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게임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는 언제나 그녀의 곁에 있을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그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게임 속, ‘FL’]
그날 밤, 윤하는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로그인하자마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시스템 메시지]
【제이든이 당신을 파티에 초대했습니다.】
윤하는 미소를 지으며 초대를 수락했다.
곧 화면이 바뀌며 성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이든이 보였다.
그는 여느 때처럼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오늘은 어떤 퀘스트를 하실 건가요, 길드 리더님?”
윤하가 장난스럽게 묻자, 제이든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특별한 퀘스트지.”
그는 그녀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함께하자, 윤하.”
윤하는 주저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게임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녀의 마음이 확실해졌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