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한지수의 기획 아래 감성적인 요소를 강조한 영상이 촬영되었고,
현장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변수가 발생했다.
모델의 스케줄이 꼬이면서 촬영이 늦춰졌고,
장소 대여 시간이 초과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수는 촬영팀과 상의하며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촬영 순서를 조정하면 일정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조명 세팅된 컷부터 먼저 찍는 건 어떨까요?"
지수가 침착하게 제안했다.
이선우는 노트북에서 대여 계약서를 확인하며 말했다.
"즉흥적인 대응보다 문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세워야 합니다.
추가 대여 시간이 가능한지 먼저 확인하는 게 우선입니다."
지수는 선우의 반응에 잠시 고민하다가 덧붙였다.
"물론 허가 문제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있으면 팀원들이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져요.
일단 진행할 수 있는 부분부터 처리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선우는 그녀의 의견을 곰곰이 듣더니,
스태프에게 일정 조정을 지시했다.
"일단 허가 요청을 넣고, 동시에 진행 가능한 컷부터 촬영하도록 하죠."
촬영장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스태프들조차 두 사람의 대화를 의식한 듯 보였다.
지수는 한숨을 내쉬며 결국 자신의 방식과 선우의 결정을 조율해 나갔다.
선우의 지시대로 스케줄 담당자가 즉시 업체와 협의에 들어갔고,
다행히 추가 대여 시간이 승인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예상보다 길어졌고, 촬영은 한 시간가량 지연되었다.
지수는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무사히 마무리돼서 다행이에요."
선우는 서류를 정리하며 담담하게 답했다.
"계획을 지키는 게 최선입니다."
지수는 선우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대표님은 MBTI 같은 거 안 믿죠?"
선우는 흘끗 그녀를 보더니 짧게 대답했다.
"네."
지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INTJ 맞으시죠?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게 대표적인 특징이니까요."
선우는 서류를 정리하며 무심히 대답했다.
"그런 거 관심 없습니다."
"MBTI가 사람 성향을 얼마나 잘 맞추는데요!
대표님 같은 분은 분석적이고 계획적인 게 특징이거든요."
선우는 무반응이었다.
지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차분하시니까 오히려 신기하네요.
감정을 잘 드러내시지 않는 편이죠?"
그 순간, 선우가 시선을 들어 지수를 바라보았다.
"업무와 무관한 이야기는 삼가주시죠."
지수는 그의 단호한 태도에 순간 움찔했지만,
곧 씩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대표님. 그래도 가끔은 감정도 중요하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선우는 대꾸하지 않고 다시 문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수는 선우의 철저한 논리와 감정 배제 태도가 자신과 달라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로웠다.
촬영은 다행히 무사히 마무리되었지만,
지수는 계속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MBTI를 믿지 않는다는 선우,
그리고 그의 철저한 업무 스타일.
지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겠지? 그런데 왜 점점 신경이 쓰이지?’
광고 촬영 후 팀 회식이 열렸다.
지수는 스태프들과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피로를 풀고 있었다.
그러나 선우는 회식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표님은 원래 회식에는 참석 안 하시나요?"
지수가 친하게 지내는 동료 디자인팀 팀장에게 물었다.
팀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대표님이 회식 자리에 나오는 거?
글쎄, 내가 일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어.
그런 사교적인 자리 자체를 안 좋아하시는 것 같아."
지수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역시 MBTI랑 상관없다면서도 성향이 딱 맞아떨어진다니까.’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지수는 조금씩 기분이 좋아졌고,
결국 휴대폰을 들고 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대표님, 회식 안 오세요? MBTI 상관없이 이런 자리도 가끔은 필요해요!]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수는 개의치 않고 술잔을 다시 기울였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재미없는 사람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