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구내식당.
“아니, 그래서 MBTI 궁합표 봤는데요.
대표님이랑 지수 팀장님 완전 반대더라고요.”
누군가 장난스럽게 던진 한 마디가 테이블 위로 퍼졌다.
지수는 식사를 하던 젓가락을 멈추고 흘깃 동료들을 바라봤다.
“그래서 자주 부딪치셨나 봐요? 상극이라던데.”
“근데 또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합이 잘 맞는 경우도 있다던데요?”
“에이, 그래도 MBTI가 과학은 아니잖아요.”
직원들은 웃으며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지수는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상극이라… 맞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선우와의 협업은 쉽지 않았다.
철저히 논리와 원칙을 따지는 그와,
감성과 직관을 중시하는 자신은 항상 대립했다. 그런데…
그날 선우가 말없이 우산을 내밀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몇 차례 지켜본 그의 작은 배려들.
차갑기만 할 줄 알았던 사람이 가끔 보이는 사소한 따뜻함.
‘MBTI 보면 저 사람이랑 나는 끝인데, 왜 자꾸 신경이 쓰이지?’
지수는 요즘 선우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가 무심코 팀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
피곤할 법한데도 끝까지 꼼꼼하게 보고서를 검토하는 태도,
그리고 가끔 아무도 모르게 팀원들의 책상을 정리해 두는 작은 배려들까지.
회의 중, 그녀가 기획한 광고 시안이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였다.
“이 부분, 감성적인 요소를 강조한 게 주효했습니다.”
팀원들이 칭찬하는 순간, 선우가 조용히 덧붙였다.
“소비자 반응 데이터와도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좋은 접근이었어요.”
그냥 형식적인 칭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우가 직접 그런 말을 한 건 처음이었다.
지수는 괜히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색하게
“아… 네, 감사합니다.”
라고 답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야근을 하던 지수는 간식을 사러 나갔다가,
퇴근한 줄 알았던 선우가 사무실에 남아있는 걸 보게 되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팀원들이 놓고 간 문서를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다.
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커피 한 잔을 내려 그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팀장님?”
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저도 남아서 일하니까요. 커피라도 한 잔 하세요.”
선우는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컵을 집어 들었다.
“고맙습니다.”
지수는 커피를 마시는 그의 모습을 슬쩍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대표님, 요즘 너무 열일하시는 거 아니에요?”
“원래 하던 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문제죠. 감정도 좀 써가면서 일하세요.”
지수는 장난스럽게 던진 말이었지만, 선우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 표정을 분석하고 있었다.
'방금 살짝 당황한 거… 맞나?
아니겠지. 근데 아까 회의 때도,
나랑 의견이 같았을 때 미세하게 끄덕였던 것 같은데…'
선우는 지수를 바라보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침묵이 나쁘지 않았다.
한편, 선우도 구내식당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별말 없이 식사를 하면서도 직원들의 대화를 흘려듣고 있었다.
‘상극이라…’
사실 MBTI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요즘 들어 지수를 신경 쓰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회의 때마다 자신에게 거침없이 의견을 내는 모습도,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자신 있게 밀어붙이는 태도도.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어느새 그런 점들이 낯설지만 싫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란 게 이렇게 작용하는 건가.’
그 순간, 선우는 지수와 시선이 마주쳤다.
선우는 지수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줄 알았다.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당연히도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수는 망설임 없이 다른 팀의 팀장에게 향했다.
'팀장님, 잠시 업무 관련해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지수는 타 부서 팀장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고,
선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미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왜 신경이 쓰이는 거지.’
지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식사 후, 선우가 다른 여자 직원과 단둘이 회의를 하는 걸 보게 된 순간이었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보고를 받고 있을 뿐이었는데,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저 사람이랑 나는 너무 다른데, 왜 자꾸 신경이 쓰이지?’
이상하게도, 서로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 두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