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사라진 기억의 흔적

3화: 사라진 기억의 흔적

한수경은 카페 한쪽에 앉아 일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바리스타로 일하는 서지훈, 아니, 서동우.

그는 여전히 완벽한 모습이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날카로운 콧날,

깊고 차가운 눈빛.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따뜻했던 미소도, 장난스러웠던 말투도,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느껴지던 애틋한 감정도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 걸까?’

수경은 지훈의 얼굴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3년 전, 그가 사라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에 대한 의문뿐이었다.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카페 직원의 목소리에 수경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

바리스타로 일하는 그의 손길은 능숙했고,

그를 향해 다가가는 손님들에게는 공손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손님이 없는 순간 그는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보고 수경은 직감했다.

그는 기억을 완전히 잃은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대가로, 단 한 사람의 기억에만 남게 되었어.”

며칠 전, 수경이 만났던 의문의 노인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동우가 왜 그런 선택을 한 거죠?”

노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남자는…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었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어.

그래서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대신,

오직 그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기로 한 거야.”

수경은 노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우가 왜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 했던 걸까?

그가 행복하지 않았던 걸까?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모두 거짓이었던 걸까?

나만 행복했던 것일까…

수경은 다시 지훈에게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저기… 서지훈 씨.”

그녀의 목소리에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수경을 담아냈다.

“저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지훈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손님과 사적인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단호한 거절이었다.

수경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냥 한 가지만 물을게요. 혹시 꿈을 꾼 적 있어요?”

지훈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무슨 꿈이요?”

“낯설지만 익숙한 공간에서, 누군가를 간절히 찾고 있는 꿈.

하지만 그 얼굴이 보이지 않는 꿈.”

그 순간, 지훈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침착한 얼굴로 되돌아갔다.

“…잘 모르겠네요.”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수경은 확신했다.

그는 기억의 흔적을 느끼고 있다.

수경은 직접 그의 기억을 되찾을 단서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과거 동우가 살던 기숙사 근처를 찾아갔다.

아무도 그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오래된 기록 속에는 분명 무언가 남아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집에서 오래된 서랍을 정리하다가

익숙한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먼지가 쌓인 그 노트의 표지를 닦아내자,

안에는 동우가 남긴 익숙한 필체의 글씨가 보였다.

“나는 한수경을 잊을 수 없다.”

수경의 손이 떨렸다.

‘동우야… 넌 정말 날 잊지 못했던 거야?’

그녀는 노트를 품에 안고 다시 한 번 결심했다.

그를 되찾기 위해서, 그의 사라진 기억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마음 한편은 무거워졌다.

그가 왜 기억으로 거래를 했을까?

그의 고통을 나는 왜 헤아리지 못했으며,

그가 기억을 지우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까.

수경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과거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밝은 미소 뒤에 숨겨져 있던 그의 슬픔을,

수경은 정말로 보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걸까?

그는 늘 장난스러운 말투로 괜찮다고 했지만,

혹시 그 말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였던 건 아니었을까?

그녀가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그의 손을 잡아주었어야 했던 순간에, 놓쳐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선택을 원망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를 떠나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그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그에게 짐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수경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녀는 이제 그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의 고통을 함께 짊어질 것이다.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동우와의 사랑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4화: 운명의 끈을 새롭게 잡다

4화: 운명의 끈을 새롭게 잡다

서지훈은 카페의 커피 머신을 닦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요즘 들어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나만 기억하는 거니? 첫사랑.""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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