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은 요즘 자신이 점점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지훈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와의 일상이 자연스러워질수록, 행복함과 동시에 두려움도 커졌다.
행복할수록, 동우와의 기억이 더 선명해졌다.
과거를 떠올리는 횟수가 잦아졌고, 문득문득 겹쳐지는 장면들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느 날, 지훈과 함께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이거 좋아하세요?”
지훈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며 물었다.
수경은 그의 손동작을 바라보며 순간 멈칫했다.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모습,
살짝 음식을 불어 식히는 습관.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했다.
‘동우도… 이렇게 먹었는데.’
그녀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애써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좋아해요.”
지훈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날 밤, 수경은 혼자 남아 깊이 생각했다.
지훈을 보면 행복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과거가 끼어들어 그녀를 붙잡았다.
‘나는 정말 지훈 씨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동우의 흔적을 쫓고 있는 걸까?’
그녀는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점점 변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였다. 지훈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동우를 떠올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의 말에 웃고, 그의 행동에 설레고, 그의 작은 배려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하루는 지훈이 수경을 바라보며 장난스레 물었다.
“요즘은 커피 말고도 다른 걸 좋아하시나 봐요?”
“네?”
“예전에는 항상 같은 메뉴만 마셨는데,
요즘은 이것저것 시도하시잖아요.”
수경은 순간 멈칫했다.
그렇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처럼 반복된 패턴 속에 살고 있지 않았다.
‘나… 언제부터 동우 생각을 덜 하게 된 거지?’
그녀는 스스로 놀랐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두려움을 불러왔다.
‘나는… 동우를 잊어가는 걸까?’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지훈이 아니라 동우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마음을 반대로 이끌고 있었다.
그날 이후, 수경은 지훈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카페에 가는 횟수를 줄였고, 지훈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이 복잡해졌다.
정말 지훈을 멀리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동우의 기억을 지키고 싶은 걸까.
‘나는 서지훈이 아니라, 서동우를 원했던 거야.’
그녀는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한편이 답답했다.
지훈은 그녀의 변화를 느꼈다.
하지만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녀를 기다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수경은 자신을 더욱 밀어냈다.
마음이 흔들릴수록, 더 강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그녀는 점점 더 흔들렸다.
지훈의 부재가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의 존재가 더 크게 다가왔다.
길을 걷다 문득 지훈과 함께 웃던 순간이 떠올랐고,
좋아하던 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가 추천해 주었던 메뉴가 생각났다.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걸까….’
그녀는 자신이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문득 핸드폰을 들었다.
지훈의 번호를 눌렀지만, 쉽게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 서지훈 씨 -
수경은 숨을 멈추고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떨리는 손끝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훈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잘 지내고 있어요?”
그 한마디에, 그녀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도망칠 수 있을까, 아니면… 다시 그에게 다가가게 될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대답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