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났다. 피로 물든 전장은 조용해졌고,
오랜 시간 이어졌던 혼돈도 막을 내렸다.
반란군은 무너졌으며, 제국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 승리 속에서, 레온은 자신이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되새겼다.
레온은 더 이상 반란군의 왕세자가 아니었다.
그는 선택을 해야 했다.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인가.
시엘은 전쟁이 끝난 후 레온을 풀어주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할 예정이었던 것처럼 담담한 얼굴이었다.
“이제 네가 원하는 길을 가라.”
레온은 시엘을 바라보았다.
자유를 갈망했던 과거의 자신이라면 이 순간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를 묶었던 사슬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무언가에 붙잡혀 있었다.
레온은 황궁을 떠났다.
그러나 떠나는 길목에서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떠나고 있는 곳, 그리고 그곳에 남아 있는 시엘을.
그리고 얼마 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며칠 뒤, 시엘은 홀로 황궁에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황제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보고서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귓가에 남아 있는 레온의 목소리만이 맴돌았다.
그가 떠난 이후 황궁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그 침묵 속에서 시엘은 오히려 더욱 거센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황제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그였지만,
단 한 사람만큼은 온전히 가질 수 없었다.
그러던 그때,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유를 얻고 싶었어. 하지만 당신 없는 자유는 의미가 없더군.”
시엘은 문 앞에 선 레온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 그리고 흔들림 없는 푸른 눈동자.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레온이 돌아온 이유를.
“넌 바보인가?”
시엘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와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레온은 천천히 다가와 시엘을 마주 보았다.
“당신도 알고 있었잖아. 내가 떠날 수 없다는 걸.”
시엘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내가 황제이든, 네가 포로이든… 그게 중요할까? 어차피 너는 내 것이니까.”
레온은 시엘의 손을 강하게 잡으며 속삭였다.
“이번에는 내가 선택한 거야. 내 의지로, 내 발로 이곳에 돌아왔다.”
시엘은 아무 말 없이 레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작게 웃으며 그를 품에 끌어안았다.
황제와 포로의 위험한 사랑이, 이제 새로운 형태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며칠 후, 황궁의 정원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시엘은 조용히 레온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후회하지 않나?”
레온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만약 후회했다면, 다시 돌아오지도 않았겠지.”
시엘은 그 대답에 만족한 듯 작게 웃었다.
황궁의 밤하늘이 고요하게 빛났다.
찬란한 별빛 아래, 시엘은 천천히 레온의 손을 잡았다.
“이제부터 너는 포로도, 왕세자도 아니다.”
레온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럼 나는?”
시엘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의 연인.”
레온은 그 말에 가만히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이제, 황제와 포로가 아닌, 동등한 존재로서의 관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결말이었다.
시엘은 레온의 손을 놓지 않았다.
밤하늘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졌다.
황궁의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다.
마치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듯했다.